
사랑이 지워지면
시 · 최우용
낭송 · 승현 유미숙
저녁 무렵 회색 빚 하늘이 날땅처럼 짙어지자
바람이 느리고 쓸쓸하게 배회했다.
사랑이 지워지면 다시 시작되는 날들이
먼 길처럼 돌아갔다.
슬픈 날이 많았다.
고독이 잠든 잎사귀라도 깨울까 봐
행여 그대에게 속마음 들킬까 봐
살고자 한 날들이 겨울밤 안에서
스스로 숨었다.
내 세월은 떨어지는 꽃잎 하나
붙잡지 못했지만
눈물 베인 밤하늘에
마주치지 못한 슬픔이 남아 있다면
생의 끝까지 거스리지 않으리.
나의 양심에 자란 사랑은
늘 아팠다.
나비가 봄을 찾아 떠났다.
헐벗은 가로수가 인내한 시간들이
핏줄처럼 뿌리에서 비상한다.
들판과 햇살 사이로
흐르는 강물 사이로
이 시간 사이로
나름 최선을 다하는 자기몫의
인생들 사이로
작은 바램이 있다면
마음 안에 정직을 품고
나도 벚꽃잎처럼 세상 속으로
다시 집을 나서고 싶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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