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둠의 단애
시 · 류인서
낭송 · 유미숙
저문다는 것, 날 저문다는 것은 마땅히 만상이 서서히
자신의 색을 지우며 서로의 속으로 스미는 일이라야 했다
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가는 일이라야
했다 그렇게 한 결로 풀어졌을 때, 흑암의 거대한 아궁이
속으로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야 했다.
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,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
앉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개울은 개울의 어둠을 아카시아는
아카시아의 어둠을 틀어 안고 바윗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
가고 있었다 누구도 제 어둠의 단애 밖으로는 한 발짝도
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한 어둠을 손 잡아주는 다른 어두움의
손 같은 건 볼 수 없었다.
- 시집 "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" 중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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